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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모든것

기본 주제에 충실한 영화 드래그 미 투 헬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다

by ㉢㎬”『㎯ 2023. 3. 8.

주인공 여자가 악령의 손에 붙잡혀 몸 부림 치고 있는 모습
드래그 미 투 헬

 

심상치 않은 도입부

 

도입부부터 심상치 않다, 이 영화. 마치 관습처럼 한 바퀴 비잉 도는 유니버설 로고 대신 다소 반칙의 성격이 짙은 유니버설 로고가 등장하고,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뒤이어 나오는 타이틀 로고. 보자마자 "뭐 저따위로 생겼나" 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스크린을 빼곡히 채우는 그 몇 자의 문장, DRAG ME TO HELL! 날 지옥으로 끌고 가? 대체 이거 무슨 이상한 영화 다냐. 이렇게 도입부부터 요란하게 타임머신을 뒤돌려 재끼며 드래그 미 투 헬은 그 자신의 지옥도를 펼쳐 보인다.

 

드래그 미 투 헬의 시작 시점

 

다소 건조하게까지 느껴지는 부지점장의 빈자리. 대출 상담원 크리스틴 브라운은 그 자리를 바라보고 동경한다. 크리스틴에게 부지점장의 자리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름길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자기만을 바라보는 연인 클레이에게 당당한 여자친구이고 싶을 것이고, 자신의 과거와 온갖 비웃음으로부터 어떻게든 탈출하고 싶어 할 것이다. 저 빈자리에 내가 꼭 앉았으면! 오죽할까. 하지만 온갖 제약들과 험담들은 크리스틴으로 하여금 모종의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든다. 그 극단적인 선택의 정점이 대출 연장을 요청하러 온 간누시 부인(로나 라버 분)의 애원을 뿌리친 일이 될 것이고, 드래그 미 투 헬의 손짓이 시작되는 건 바로 그 시점부터 이다.

 

영화적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선택한 결정이 낳는 돌풍지대. 이런 전제를 깐 상태로 드래그 미 투 헬은 정신없이 관객들의 두뇌를 희롱한다. 새까만 줄이 잔뜩 그어진 날카로운 손톱으로 나무 책상을 끼적끼적 두들기는 모습은 미리 말하지만 약과다. 드래그 미 투 헬에는 이보다 더 불유쾌하고 극단적이며 등골이 오싹하게 만드는 장면들로 즐비하다. 더 큰 문제는 그 불유쾌함이 불유쾌함을 넘어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 있다. 피칠갑이 넘실대는 영화는 아니지만(물론 일부 장면에서 피가 넘실거리긴 한다만 전체적으로 불쾌할 정도까진 아니다) 피칠갑의 충격요법, 그 이상의 카타르시스가 존재한다.

 

이와 같은 영화적 카타르시스를 유발하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성난 손짓의 미학, 다른 하나는 귀가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 울려 대는 음악과 효과음들이다. 우선 성난 손짓이 전달하는 미학부터. 드래그 미 투 헬에서 손이라는 신체 부위가 갖는 존재감은 꽤나 크다. 영매사 숀 산 디나(아드리아나 바라자 분)를 초대해 한바탕 벌이는 라미아의 저주 퇴치 시도 장면에서는 서로가 손을 맞잡은 채로 마음을 모으는 모습이 있고, 저주의 화신 가누시 부인이 주로 쓰는 신체 부위는 손과 팔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파괴 행위들이 손을 통해 이루어진다. 무기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손을 통해 일어나는 일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라스 폰 트리에의 문제작 안티크라이스트의 한 스틸 속 모습을 인용해 보자면, 정사를 나누는 남녀의 모습 뒤로 수없이 쏟아지던 손길들이 있다. 드래그 미 투 헬 속 손짓의 모습은 그 강렬함을 놀랍도록 빼닮아 섬뜩함을 자아낸다. 첫 손짓의 충격이 다음 손짓의 충격을 부르고, 그다음 손짓의 충격을 연쇄적으로 부른다. 나중에는 손짓만 봐도 절로 움찔댄다. 이토록 여러 모습의 손이 겹쳐지며 낳는 파급력은 그야말로 상상하는 것 이상을 뛰어넘는다. 그래서 드래그 미 투 헬은 등골 오싹한 호러영화인 동시에,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손이라는 신체 부위가 가장 무섭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영화이기도 하다.

 

기본 주제에 충실한 모습

 

음악은 어떠한가. 크리스토퍼 영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온갖 음악들과, 적재적소에 배치된 효과음들은 스크린 속에 투사된 이미지의 영혼에 귀중한 숨결을 불어넣는다. 특히 효과음들의 공이 크다. 온갖 파열음과 접촉음 들은 섬뜩함에 한 꺼풀을 더하고 또 한 꺼풀을 더해 그 모습들을 확실히 각인되도록 만든다. 너무 그 소리가 과하게 울리는 까닭에 불쾌함 역시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효과들이 공포의 질감을 한결 배가시켰다는 것에는 하등의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이런 모습들이 뭉쳐져 드래그 미 투 헬은 그 지하 세계의 지옥도를 가상 체험하는 감흥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한 번 붙잡은 긴장의 끈은 쉽사리 놓지 않고, 저주라는 기본 주제에도 꽤 충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새까맣게 날 선 손과 귀를 찢는 음악의 결합, 이게 어디까지 관객을 희롱할 수 있을까. 드래그 미 투 헬이 애초에 목표했던 건 아마 이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이 두 가지 요소의 협력은 실로 무거움과 동시에 약간은 뒤틀린 쾌락을 유발한다. 마치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타이틀 로고가 또다시 뜨고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 괴상하게 낄낄대며 상영관을 빠져나와도 아무도 뭐라 안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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