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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모든것

공포심을 조장하는 직설적인 재난보고서 영화 노잉

by ㉢㎬”『㎯ 2023. 3. 8.

지구가 종말 하려고 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지구와 도시가 빨갛게 물들어 있다
노잉

 

 

 

얼핏 보면 그저 평범한 재난영화 같다. 노잉에 대한 첫인상은 우습게도 이랬다. 흡사 재난이라는 이름을 뒤집어쓰고 시청각적 폭력으로 관객을 인도하는 것 같은 이 모습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물론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노잉은 분명 재난 영화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어떤가. 영화라기보다는 하나의 보고서에 가깝다. 그것도 절로 섬뜩해지는 온갖 숫자들의 나열이 스크린에 가득 차오르는, 소름 끼치는 공포를 수반한 재난 보고서다.

 

이야기는 50년 전의 시점으로 되돌아간 지점에서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다. 당시의 기록을 환기시키는 타임캡슐이 있고 그 안에 '루신다 엠브리'라는 소녀가 쓴 숫자로만 채워져 있는 쪽지 하나가 들어 있다. 이것을 50년 후 캘럽 (챈들러 캔터베리 분) 이 읽게 되고, 쪽지가 캘럽의 아버지인 존 (니콜라스 케이지 분) 이 읽기 시작하면서 소용돌이가 시작된다. 존은 그 쪽지 속 숫자들을 분석하기 시작하고, 분석해 보니 그 쪽지 내용은 지난 50년 동안 일어났던 각종 대참사들과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었고, 심지어 다가올 내일 일어날 참사들까지 고스란히 일러 주고 있다는 것. 이것이 노잉을 지탱하는 이야기의 뿌리다.

 

꽤 직설적인 아이디어에, 직설적인 재난상황을 직조해 만들어진 영화다. 재난을 영화의 주요 틀로 잡은 영화답게 재난의 상황에는 그 요소들이 바깥에 흘러 넘 칠 정도로 충실하게 대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121분이라는 러닝 타임 동안 총 세 번의 큰 재난이 터지는데, 각 재난들이 상황별로 꽤 실감 나게 짜여 있어 보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가져다준다. 대개 실감 나는 장면을 보게 될 경우 그 장면에 마치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노잉 속 재난장면들은 이런 간접 재난 체험을 시켜 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 특히 절정을 이루는 지하철 폭파 장면은 이 영화 속 수많은 재앙 장면들 중 단연 으뜸이다. 사람에 따라 '손발이 오그라드는' 체험을 진짜 할 수도 있다.

 

이토록 재난을 실감 나게 표현하고 있지만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노잉은 한창 재난을 보여 주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한 번 뒤집는다. 그리고 인간 본연이 가진 '믿음'에 대해서 꽤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마치 극 중 존의 대사인 '지구의 종말을 어떻게 막지?'처럼, 이 영화를 통해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은 관객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사람과 사람 간의 불신을 어떻게 막지?'. 종교적인 논쟁을 떠나 이 질문은 시종일관 떠돌아다니고, 답은 (아마도 논란이 상당할) 결말에서 드러난다.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존의 충고를 끝내 듣지 않고 메신저들과 함께 사라진 아이들을 찾으러 무작정 나갔다가 사고로 최후를 맞는 다이애나(로즈 번 분)의 모습에서도 드러나듯, 그 사람과 사람 간의 믿음이 실종된 상황에서 드러나는 참혹한 모습들. 그리고 그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메신저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순수한 믿음과 두려움으로 일관했던 캘럽과 다이애나의 딸 아비(라라 로빈슨 분)뿐이다. 앞뒤를 생각하면 다소 안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노잉의 결말이 파급력이 꽤 센 것은 바로 이런 상황 설정이 빚는 묵직한 질문에 있다.

 

끊임없이 보청기를 타고 캘럽을 괴롭히는 나긋나긋한 속삭임의 연속처럼, 노잉은 분명 직설적인 재난보고서, 그것도 공포심을 충실히 조장하는 재난보고서를 관객 앞에 소환시킨다. 그 직설적인 울림이 혹자에게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나는 이 결과물이 꽤 마음에 들었다. 이야기가 중반 들어 약간 덜컹거리는 느낌도 적지 않으나 시선을 압도하는 재난의 모습에 기어이 홀리고야 만다. 만약 노잉이 목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충격의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하는 것이었다면, 그 목적만큼은 분명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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