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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모든것

독특함을 자랑하는 추억의 슬래셔 영화 리추얼 줄거리

by ㉢㎬”『㎯ 2023. 3. 8.

 

추억의 슬래셔 영화

 

추억의 슬래셔 영화. 그런데 그중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무수한 훌륭한 작품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바로 이 '리추얼'. 그리고 또 그중에서도 특히 유니크하고 엄청 독특한 의미를 담은 작품이기도 하다. 슬래셔 작품의 거의 철통 같은 컨벤션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청춘남녀가 한 명도 등장하지 않고 오히려 여기에서는 그것에 정면으로 대항하려는 듯 나이가 지긋하게 드신 5명의 중년 후반 정도의 젊은 할아버지들이 희생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게다가 섹스와 파티에 정신이 나간 골 빈 희생자들이라는 점이 아니라 무려 중후한 의사 선생님들이라는 점. 이 정도면 그 흔한 70, 80년대 호러슬래셔라는 공식에서 슬며시 미끄러져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소리이다.

 

아마 그렇기 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래서, 이렇게 늙수그레한 주인공들이 나와서일까 영화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쉽게 한번 정리해 보자. 이 작품을 언뜻 보면 여러 작품이 스쳐 지나간다. 존 부어만 감독의 걸작 캠핑 스릴러 [서바이벌 게임 Deliverance, 1972]으로 시작해서 역시 캠핑 슬래셔의 정석인 [13일의 금요일 Friday The 13th, 1980]을 거쳐 어쩌면 황당한 상황에서 황당한 영웅이 될 수밖에 없는 바로 그 [프레데터 Predator, 1987]의 감흥을 살짝 보여주며 영화는 막을 내리고 잠시 뒤, 뜬금없이 밀려오는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 1979] 풍 전쟁의 비극적 감성을 안겨준다.

 

줄거리

 

대체 무슨 작품이야. 이거? 뭐 조금 오버를 하기도 했지만 그게 그렇다. 물론 리추얼은 저예산 작품이면서 동시에 시끌벅적한 미국적 감성이 약간은 배제된 건조한 어떤 습기를 머금은 캐나다산 호러작품이다. 플롯만 보자면 한 무리의 일행이 깊은 숲 속으로의 여행을 시작하고 곧이어 이어지는 난도질, 살인, 추격전을 벌이다가 마지막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살인마와 한바탕 몸싸움을 하고 끝장을 본다는 여타 캠핑 슬래셔의 공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그 점에는 변명할 여지없는 바로 그 스테레오타입이다. 그런데 작품에서 중요한 건 그 캠핑에 항상 수식어로 붙었던 틴에이저란 말이 완전히 거세되어 있다. 게다가 그 흔한 여성-희생자의 그림자조차도 등장하지 않는다. 언뜻 보면 이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엄청 달라지는 중요한 것이다. 틴에이저는 고사하고 이제 인생의 황혼기로 접어들어 가는 의사 선생님들, 그러니까 어쩌면 꼰대들이 잔뜩 부푼 마음으로 한적한 숲으로 캠핑을 온다. 이어지는 급박한 상황들. 어쩌다가 사고를 당하고 여행길을 방해하며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그들에게 서서히 침입해 들어온다.

 

그리고 밝혀지는 이상한 진실. 뭐 말이 좀 되지 않는 황당한 지점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런 건 별 중요한 건 아니고 어차피 이런 판타스틱한 호러영화는 그것을 어떤 것에 대한 은유로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니까. 그런데 그 은유가 또 독특하다. 예상치 못한, 전쟁에 대한 어떤 은유. 그것도 훌쩍 뛰어 내려가 2차 세계전쟁. 2차 세계전쟁? 그들은 여행 중에 어떤 무엇을 발견하게 되는데 자신들과 같은 의사들이 그곳에 남겨놓은 단서들이다. 그 단서는 그들을 공격하고 결국은 전형적인 사이코-괴물 살인마의 모습으로 다시 귀환하여 어떤 처벌을 내림과 동시에 처벌을 당해야만 하는 바로 그 은유로서 나타난다. 그러니까 그 의사들은 과거의 그 못된(?) 의사들의 분신으로서 여기에 다시 불려 온 것이고 의사들의 희생자인 그 괴물에게 다시 처형을 당하는 것이다.

 

이건 일종의 반성이고 고백이다. 영화가 십 대들을 호출하는 대신 건실한, 건실하게 보이던 아버지들을 호출한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당연히 이것으로 영화는 그 독특한 무엇을 획득한다. 사실은 사회적 지위와 권위를 가진 우리 아버지들은 애들보다 더 겁쟁이들이고 무척 호들갑을 떨며 서로 믿지 못하고 결국에는 힘없이 무너지는 나약한 고깃덩어리에 불과해요. 더불어 어떤 역사 속에서 무수한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지요. 그래요. 잘못했어요. 다 위선이고 기만이었어요. 이제 반성할래요. 이건 지배의 역사를 써온 남성이 여성에게 하는 하나의 고백도 된답니다. 대충 이런 말을 영화는 하는 듯하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 왜 하필이면 뜬금없게도 2차 대전의 어떤 희생자가 귀환하여 살인마-괴물의 모습을 하는 걸까? 더 가까운 베트남 전쟁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좀 너무 내려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생각으로는 말 그대로 베트남 전쟁은 너무 가깝기 때문이지 않을까? 그러니까 영화가 나온 연도가 1977년이니 그걸 대놓고 비판하기에는 아직 좀 이른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일까? 나는 이 영화를 쭉 보다가 나중에 숲 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을 볼 때 바로 그 베트남 전쟁 괴물의 귀환이라는 스탤론의 [람보 First Blood, 1982]가 생각이 나기도 했다. 참 많은 영화가 참조된다. 이 작품, 앞서간 좋은 작품이다.

 

독특함을 자랑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무거운 영화는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똑똑한 내가 그렇게 느낄 뿐이고 영화는 잘 만든 호러-슬래셔물이다. 경박하지 않고 진중하며 시각적으로 잔인한 장면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다가 갑자기 임팩트한 몇몇 참신한 고어 장면이 충격으로 다가오고 바로 독 안에 든 쥐들이 느낄법한 그 심리스릴러적인 느낌이 영화에 몰입하게 한다. 더불어 '리추얼'은 아저씨, 중년, 할아버지들, 더불어 남자들만 나오는 슬래셔물이란 점에서도 그 독특함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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