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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모든것

안타까운 수작 영화 사과 의 등장인물 과 돋보이는 연출력

by ㉢㎬”『㎯ 2023. 3. 8.

선남선녀가 시골길에서 손잡고 걸으며 행복해하는 모습
사과

 

 

사랑을 소재로 하는 로맨틱 드라마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저는 한 여자와 두 남자, 그리고 다소 판타지적인 상황 설정 및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로맨틱 드라마는 남성 관객보다는 여성 관객 취향에 더 잘 어울리는 영화이니까요. (로맨틱 드라마를 혼자 보러 오는 남자 관객이 혹은 남자들끼리 보는 관객이과연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 보세요.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자신은 썩 내키지 않더라도 이런 장르의 영화를 보러 여자랑 극장에 갈 겁니다.) 그러다 보니 여자들이 선호할만한 내용과 에피소드로 채우려고 하다 보니 비현실적인 설정이나 에피소드의 등장은 어느 정도 필수이죠. 등장인물 또한 남자가 두 여자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설정이기보다는 주인공 여자가 다른 성격의 두 남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쪽을 선택하는 영화가 많습니다.

 

영화의 등장인물

 

이 영화의 등장인물 또한 그런 식상한 공식에 들어맞습니다. 주인공 현정(문소리)과 전 남자친구인 민석(이선균), 그리고 현 남편인 상훈(김태우)이 이 영화의 주된 등장인물이라고 보면 말이죠. (제 생각은 그렇지 않지만 포스터나 간단한 시놉시스를 읽어보면 그렇죠.) 게다가 수많은 영화에서 다룬 사랑이야기를 이 영화에서도 다루고 있는 점은 이 영화가 엄청 심심하고 식상할 거라는 선입견을 안겨주기엔 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실적인 영화

 

(수많은 영화와 차별성을 보이기 위해 이런 장르의 영화에서 각기 다소 비현실적이라고 하더라도 판타지적은 상황 설정이나 에피소드, 장면을 집어넣으려고 노력하는 걸 테고요.) 이 영화는 다양한 연인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짠 까닭에, 이 영화 전반에 걸친 내용이 너무나 현실적입니다.

그런데 이 점은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식상함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큐를 제외한 대부분의 영화는 일정 부분의 비현실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경향이 있죠.) 자신의 일상생활을 찍은 영화가 있다면 보시겠어요라는 설문을 해본다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지 않겠다고 할 겁니다. 영화를 보지 않아도 자신이 직접 겪고 있는데 그 현실을 되풀이해서 영화로 볼 이유가 없습니다.

 

돋보이는 연출력

 

수험생이 자신이 풀어 정답을 맞힌 문제를 되풀이해서 다시 풀 이유는 거의 없을 겁니다. (찍어 맞춘 문제가 아닌 이상 자신이 풀지 않은 다른 문제를 푸려고 하겠죠.) 또는 고만고만하게 관람한 영화를 특별한 이유 없이 다시 보려고 하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자신이 보지 않은 다른 영화를 보려고 하겠죠.)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식상함이 깊숙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커플이나 부부가 겪을 만한 이야기 즉, 너무나 평이하고 익숙한 이 사랑 이야기가 연애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겐 충분히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식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바로 자연스럽고 공감이 가도록 풀어나간 감독의 연출력 때문이란 생각이 듭니다.

즉, 이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이 너무나 공감이 가도록 연출을 함으로 인해 지극히 식상하면서 평이한 현실적 소재가 오히려 빛을 발한 셈입니다.

 

관객들이 '그 이야기 너무 뻔하다 뻔해'가 아니라 '맞아, 맞아. 내가 연애할 때랑 저랬지. 어쩜 내가 겪은 일이랑 비슷하니.'라고 생각하도록 해서 그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 거죠. 관객들이 수긍하고 공감을 가도록 현실적 사랑 이야기를 쫄깃쫄깃하게 풀어나가고 있어서, 식상함이 반대로 재미와 공감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긴 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의 상영시간인 2시간 동안, 관객들은 이 현정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요리로 비유하자면,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요리 재료로 탄생한 무척이나 맛난 음식인 셈이죠.

굉장히 재미있고 신선한 영화 소재를 가지고도 고만고만한 그냥 그런 영화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으니, 이 영화감독의 연출력이 참 돋보입니다.

 

이 영화를 빛내고 있는 건 바로 배우들의 명연기입니다. 이 영화에서 주연 배우인 문소리 씨나 김태우 씨는 자연스럽고 캐릭터에 딱 들어맞는 연기를 놀랍도록 보여주고 있으며, 출연 비중이 다소 적었던 이선균 씨 또한 그에 못지않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지요. 그뿐만 아니라 영화 전반에 걸쳐 그다음으로 많이 등장하는 현정의 아버지(주진모) 및 가족들의 연기 또한 빛을 발하고 있는데, 그들이 바로 영화에서 웃음이라는 향신료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관람하다 떠오른 점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첫째는 바로, 연극의 막이었습니다.

연극에서 사건이나 배경이 전환이 될 경우 막이 내려지면서 그 뒤에 새로운 배경 세트를 준비하고 배우들이 그에 맞는 의상 및 분장을 합니다. 이 영화 또한 현정에게 커다란 사건이 전환이 될 때마다 막이 내려지듯 몇 초간 검은 화면으로 변했다가 다시 새 장면으로 바뀌는 게 마치 연극의 한 막이 끝나고 새로운 막으로 시작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음으론 제목의 의미를 생각해 볼 때 사과(Apology)와 사과(Apple)라는 두 가지 의미로 여러 여운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에선 각 인물이 다른 인물한테 사과(Apology)를 하는 장면이 의미심장하게 등장합니다. 영화 중반에 민석이 현정에게 (그렇게 떠나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현정은 상훈에게 (딴 남자를 만나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또한 현정의 아버지가 다른 이유로 우는 현정에게 리모컨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울지 말라며 어쩔 줄 몰라하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실수도 합니다. 특히, 서로 많은 시간 동안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남녀가 만나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람사이의 관계가 틀어지게 만드는 건 바로 그런 실수 때문이 아니라 그런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사과를 하지 않아서일 경우가 참 많습니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완벽하지 않기에 누구나 실수를 저지를 수 있고, 저지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런 실수를 인정하며 사과하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게 중요할 겁니다.

또한 중반에 현정이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고 있는 민석에게 빨간색이 아닌 초록색 사과(Apple)를 주는 장면은 참 의미심장했습니다. 하도 많은 과일 중에 하필이면 사과를, 거기다 빨갛게 익은 사과가 아니라 설익은 느낌을 주는 풋사과를 주었으니 말입니다.

 

안타까운 수작

 

안타까운 점은 2005년 제작을 마치고 관객 시사회까지 열었지만 개봉을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는 점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2008년에 개봉을 하였지만, 제대로 관객들에게 보일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스크린에서 내려갔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수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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